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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신요금이 ‘문화비’라는 해괴한 궤변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그제 “(우리나라의) 통신비는 굉장히 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신요금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대전화를 금융 거래, 비행기표 예약 등 온갖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통신비를 일종의 ‘복합문화비’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재의 통신요금이 비싸지 않다는 주장이다.
최 위원장의 논리는 그 자체로 궤변이다. 그의 논리를 전기요금에 적용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전기가 주로 조명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전기를 이용해 난방이나 텔레비전 시청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그렇다면 전기요금도 통신비처럼 일종의 문화비로 간주해 아주 비싸게 받아도 된다는 말인가. 백번 양보해 통신비를 문화비로 보더라도, 그 ‘문화비’를 왜 통신업체가 몽땅 가져가야 하는가. 그런 문화활동을 가능하게 해준 금융사나 항공사 등에는 한푼도 안 나눠줘도 되는가. 도대체 말이 안 되는 논리다.
최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최근 거세지고 있는 통신비 인하 요구를 비켜가려는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 합동으로 통신요금 인하 대책반을 가동중인 상황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통신요금을 대폭 내릴 수 없다고 미리 선을 긋는 것과 같다. 해괴한 개념을 끌어들여 현재의 통신비가 “싸다”고 했으니 방통위 처지에서는 통신요금을 내리게 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방통위가 업계 편에 서서 이런 식으로 현실을 호도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시민단체 등이 통신요금 인하를 요구할 때마다 소비자가 많이 써서 요금이 많아졌고, 투자 여력을 위해 통신비를 크게 내릴 수 없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최 위원장이 ‘문화비’ 개념을 들고나오더니, 어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비를 줄이는 게 (고물가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물가안정 차원에서 통신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대책반까지 만들었다가 이제는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휴대전화 사용을 줄이라니, 한마디로 국민을 우롱하는 꼴이다.
통신비를 인하하려면 요금체계 개편, 통신업체와 제조업체의 짬짜미 근절, 요금 인가 방식 개선 등 할 수 있는 방안이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정부가 통신업계 편에 서느냐 소비자 편에 서느냐이다. 해괴한 궤변만 늘어놓지 말고 소비자 편에서 통신비 인하 방안을 적극 강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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