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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08 19:13 수정 : 2011.04.08 19:13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의 젊음들이 스러지고 있다. 그제도 2학년생 박아무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올해 들어 벌써 4명의 학생이 자살했다. 꽃다운 이들이 채 피지도 못한 채 지는 이 ‘잔인한 봄’이 지속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불안하다.

네 학생의 자살 원인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바탕에는 ‘서남표식 개혁’으로 통칭되는 목표지상주의와 과도한 효율·경쟁주의가 깔려 있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2006년 취임한 뒤 ‘카이스트 발전 5개년 계획(2007~2011)’을 통해 카이스트를 세계 10위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구체적 수단으로 100% 영어수업, 차등 등록금제(징벌적 등록금제), 교수 정년 심사 강화 등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강제적 경쟁체제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가장 논란이 된 차등 등록금제의 경우, 지난해 전체 재학생 7805명(2개 학기 연인원) 가운데 1006명이 기준 학점(4.3 만점에 3.0 이상)에 미달해 1명당 평균 254만원의 등록금을 냈다. 8명에 1명꼴이다. 이 제도는 모두가 기준 학점 이상을 받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학생 전체를 가혹하게 정글로 내몬다. 싸움에서 지는 학생은 ‘패배자’라는 괴로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이라고 경쟁과 동떨어진 채 고립된 섬처럼 존재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대학의 경쟁 시스템이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추었느냐 여부다. 서남표식 개혁은 이 동의와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카이스트의 한 학생이 교내에 붙인 대자보에서 “카이스트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 사천 학우다. 이 학교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토로한 것은 일방통행식 경쟁주의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 준다.

카이스트의 잔인한 봄을 통해 우리는 과도한 경쟁주의의 파탄을 목도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경쟁주의는 대학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살아남는 것의 중요성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면서 우리 사회는 경쟁지상주의에 빠져버렸다. 카이스트 비극의 책임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자유로울 수 없고,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이유다.

카이스트는 과도한 경쟁 시스템을 전면 수정하고, 자살 방지 카운슬러 제도 등을 조속히 확대해 학생들을 보듬어야 한다. 무엇보다 서남표 총장은 이 비극적 사태를 불러온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긴 안목에서 대학의 본래 가치를 회복하는 방안을 찾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학은 그저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 및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와 목표를 고민하고 찾는 사유의 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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