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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1 20:03 수정 : 2011.04.11 20:03

교육자인가 학교 사업가인가.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교육자라면 그의 제자 4명이 자살했을 때 그는 이미 사퇴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리에 매달리는 걸 보면 부패사학의 학교 기업가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라면 더더욱 대학 총장직에 남아 있어선 안 된다. 명예롭게 퇴진할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법이다.

카이스트 교수협의회가 어제 총회에서 서 총장의 퇴진 문제를 논의한 끝에 퇴진에 유보적이었다고 한다. 희생된 학생과 실종된 학교교육 앞에서 참으로 궁색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서 총장은 이것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오해해선 안 된다. 교수들의 선택은 학교 명성을 그나마 지키려는 고육지책일 뿐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교수나 학생 등 학교 구성원과 일반 사회에서 이미 끝났다. 그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징벌적 수업료 제도를 폐지하면서 더는 카이스트에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그의 퇴진을 통해 그가 도입한, 나머지 기계적 경쟁주의 제도도 청소해야 할 것이다.

서 총장이 퇴진해야 할 이유는 단지 학계, 대학가, 시민사회 등의 거센 여론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자신도 잘 알겠지만, 서 총장은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다. 그는 기업가가 외형 확장에 혈안이듯이, 학교 규모를 늘리는 데만 전념했다. 징벌적 수업료도 그 재원으로 쓴다는 이야기도 있다. 둘째,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대학 서열에만 집착했다. 서열을 위해 터무니없는 전과목 영어 강의를 강제했고, 이는 교육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렸다. 결국 서열은 그 자신의 명성을 위한 것이지 학생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창조적이고 사회의 존경받는 카이스트를 꿈꾸지 않았다.

이밖에 규제와 경쟁 일변도 정책은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고사시켰고, 민주적 소통구조를 없앴다. 학문은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발전하며, 참여와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담화문에 공부 잘할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버젓이 하는 걸 보면 상식을 의심받아 마땅하다.

타인의 고통에 최소한의 관심도, 공감할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존재일 뿐이다. 서 총장은 속히 퇴진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카이스트를 위한 마지막 봉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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