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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카이스트 혁신위, 학생들의 죽음 헛되이 말아야 |
학생 네 명의 자살로 폭발했던 카이스트 경쟁지상주의의 문제가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자체적인 쇄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수임기구로 나선 혁신비상위원회(혁신위)가 학내는 물론 학교 밖 여론을 널리 수렴해, 학문에 대한 열정과 도전, 협동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학교 교육과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마련하기를 간절히 빈다.
학교 구성원의 의사는 분명했다. 서남표 총장의 경쟁 위주의 제도 개혁이 실패했는지, 서 총장에게 이를 인정하도록 요구할지를 한꺼번에 묻는 안건에 48.8%가 찬성했다. 반대는 37.2%였다. 재석 과반수를 요구하는 표결 요건 때문에 부결됐을 뿐 학생 다수는 ‘서남표식 개혁’은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교수들은 별도의 안건에 90% 가까이 찬성했다. 새로 구성되는 혁신위가 개혁안을 확정하고 총장이 이를 수용하도록 한다는 안건이었다. 서 총장도 이를 100% 수용했으니, 대세는 서남표식 경쟁지상주의의 혁파 쪽으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서 총장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일부 언론만이, 학생들이 서 총장의 ‘개혁’을 추인한 양 사태를 호도하고 있을 뿐이다.
경쟁지상주의 시스템을 극복하고 새로운 카이스트의 모델을 세우는 작업은 이제 혁신위가 감당해야 한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혁신위는 다음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입장을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다. 우선 학교 서열이냐 교육·연구의 질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다. 서 총장은 서열을 강조한 나머지 학교의 외형 확장에 전념했다. 전 과목 영어강의 같은, 연구와 교육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비정상적 제도 도입도 강제했다. 둘째, 학문에 대한 열정과 실험·도전정신을 키울 것인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재주만 기를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국민이 전액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은 학생들의 열정과 헌신을 기대한 것이지, 이들 개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서 총장 취임 이후 대두된 ‘총장 독재’를 혁파하도록 학교 거버넌스도 정상화해야 한다. 총장이 이사후보를 추천하고, 이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총장을 선출하는 지금의 구조에선, 어떤 총장이건 마르고 닳도록 독재할 수 있다. 이런 절대권력을 배경으로 인사위원회 등 각종 심의기구를 무력화시키고, 학과장 중심제를 통해 총장이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바꿨다. 그 결과 소통은 막히고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는 질식했다. 학문적 경쟁력의 토양인 대화와 토론, 경쟁과 협력의 정신 또한 사라졌다.
학생들의 비극적 주검 위에 버티고 있는 총장의 모습이 낭패스럽긴 하다. 열정과 도전정신이 빛나고 경쟁과 협동정신이 공존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할 혁신위의 책무가 더욱 막중한 까닭이다. 그 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혁신위도 그와 함께 제자의 주검을 밟고 선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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