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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대차노조 ‘세습 채용’ 요구 철회해야 |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가 올해 단체협약 요구안에 ‘직원 신규 채용 시 정년퇴직자 및 25년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정규직 직원의 자녀를 채용해 달라는 일종의 ‘정규직 세습’ 요구인 셈인데, 사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지나치게 이기적인 발상이다. 현대차노조는 당장 이 방안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
현대차노조의 구상은 우선 헌법이 보장하는 기회균등 원칙을 훼손할 소지가 크다. 노동계 싱크탱크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8월 현재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율은 50.4%에 이른다. 또 통계청이 엊그제 내놓은 ‘3월 고용동향’에서 3월의 청년층(15~29살) 실업률은 9.5%로 1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정 소득과 신분 안정을 보장받는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적다는 방증이다. 현실이 이런데 국내 굴지 기업인 현대차에서 ‘세습 채용’이 제도화하면 많은 구직자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노조는 과거 일부 사립대 입시에서 교수·교직원 자녀들이 음성적으로 우대를 받다 철퇴를 맞았던 사실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현대차가 어떤 곳인가. 대법원이 지난해 7월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한 뒤, 현대차는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 됐다. 8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에 견줘 60% 수준의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아직 정규직화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되레 3월에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만 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사내하청 노동자 45명이 소속 회사에서 해고되는 등 비정규직의 처지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 자녀에 대한 채용 특혜를 요구하면 형편이 나은 노동자들이 더 어려운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비난을 사지 않을 수 없다.
4만5000여 조합원의 현대차노조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최대 규모 노조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번 요구는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강화할 우려마저 있다.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골몰하는 노동운동 세력에게 사회 발전의 기대를 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차노조를 이해해줄 구석도 있기는 하다. 한번 정규직에서 탈락하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우리 노동시장의 양극화 체제가 노조를 특혜 요구라는 ‘유혹’으로 빠져들게 했을 개연성이 크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정규직 직원 자녀에게 일정한 이익을 주는 제도가 다른 대기업에 존재하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선의로 이해해도 현대차노조의 요구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현대차노조는 소탐대실하지 말고, 최대 노조답게 전반적인 노동현실의 개선을 위해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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