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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9 19:54 수정 : 2011.04.19 19:54

51년 전 이 땅을 뒤흔들던 아우성은 올해도 여지없이 핏빛 선연한 진달래꽃으로 피어나 다시 산하를 붉게 물들였다. 그날 민주의 제단에 피를 뿌린 영령들 앞에 부끄런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여전히 도도한 반민주 반인권의 탁류 앞에서 조아린 머리 다시 들기 힘들다.

해를 거듭할수록 낯설어지던 4·19 민주혁명의 풍경은 올해 들어 더욱 낯설다.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가 뜬금없이 4·19 영령과 그 유족에게 사과하겠으니 받으라고 떼를 쓰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또 이들의 사과를 받아들여, 이른바 건국세력과 4·19 민주세력이 화해하라고 반민주 언론들이 강짜를 부린다. 역사적 죄과에 대한 눈곱만큼의 성찰과 반성도 보이질 않으니, 그 저의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기념사업회는 유족이 아니라 보도진을 불러 성명 발표를 예고한 뒤, 4·19 민주묘지에서 성명을 낭독하려다 유족들에 의해 쫓겨났다. 사죄를 선심 쓰듯이 발표하려 했으니 유족의 상처를 덧낼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더 가관은 기념사업회를 앞세워 입 발린 사과와 화해 그리고 친일·독재 부역세력의 복권을 추진하는 일부 언론의 작태다. 이들은 이 정부 들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등 집요하게 이승만 일파를 건국세력으로 추앙하려 했다. 여의치 않자 이번엔 이른바 건국세력과 민주세력의 화해를 강권한 것이다. 등을 떠민다고 될 화해도 아니려니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증하는 일에 누가 동의나 할까.

헌법 전문이 명시했듯이, 건국의 기초는 상하이임시정부였다. 이승만은 임정 대통령 시절, 직무유기는 물론 공금유용 혐의 등으로 탄핵당했다. 그는 임정에 도움보다는 혼란을 안겨줬다. 해방 후엔, 진정한 건국의 아버지라 할 임정 요인들을 철저히 배척하고 탄압했다.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체하고 대신 일제 앞잡이들과 손잡았다. 민주공화정에 기반을 둔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려던 민족의 염원은 여지없이 깨졌다. 정부 수립 뒤에도 헌정과 인권을 제멋대로 유린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이승만 왕조’를 건립하려 했다.(박정희도 그 전철을 밟았다.) 이에 맞서 학생 시민이 일체가 되어 역사의 제단을 피로 물들이며 항거한 것이 바로 4·19 혁명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두고 건국세력 운운하는지 가소로울 따름이다.

아마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록 권력과 부를 틀어쥐고 있지만, 그들은 친일과 독재의 적자라는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 정통성에서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보니 부와 권력의 기반이 항상 불안하다. 이 문제를 일거에 풀어줄 열쇠가 바로 이승만 복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눈 밝은 국민이 그런 현혹에 넘어갈 리 없다. 부질없이 역사와 국민을 능멸하는 짓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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