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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카터 방북 성과, 부정적으로만 볼 일 아니다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이 그제 2박3일의 방북 일정을 마쳤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그에게 걸었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방북을 전후한 남북 양쪽의 기묘한 행태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남쪽은 카터 방북 전부터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고, 북쪽도 진정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기회가 사라졌거나 새로운 장애가 나타난 건 아니다. 또 카터 방북은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북은 정상회담까지 포함해 전제조건 없이 남쪽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카터 방북단을 통해 남쪽에 전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쪽으로 오려던 일행을 초대소로 다시 불러 그런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그렇게 해서는 대화 제의의 진정성에 무게가 실리기 어렵고 성의 없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남의 일부 당국자와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북의 제의를 평가절하하면서 내용상 새로울 게 없다거나 제3자를 통한 전달방식 자체를 문제삼았다. 기대가 무산된 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며, 카터 방북단의 순수성을 폄훼하기도 했다. 방북 전부터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미리 못박거나,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태에 대한 사과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그거 보란 듯이 카터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부었다.
이번 북의 어정쩡한 행태는 두말할 것 없이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는 북 체제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남쪽의 강고한 태도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은 지난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비망록을 통해 남이 전제조건을 고집할 경우 “대화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서로 일이 안되는 쪽을 미리 상정해 놓고 그쪽으로만 달려간 셈이다. 그래선 희망이 없다.
일부에서는 북의 제안을 “새롭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형태로나마 김 위원장이 남쪽에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한쪽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더 구체적인 북의 제안을 기대하는 소리도 나온다. 남북 양쪽이 이런 변화의 싹들을 살려나갈 때 6자회담 3단계 접근안에도 탄력이 붙는 등 상황을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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