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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유럽연합 FTA, 졸속 심의에 졸속 비준 안 된다 |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를 열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표결처리할 예정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중소상인 보호 장치 강화 등 정부여당의 대폭 양보를 표결 참여 명분으로 내세웠다. 어차피 한나라당 단독으로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할 예정인 만큼 민주당으로서는 합의처리에 동의해주되 실리를 챙기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칫하면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약속한 대가는 크게 두가지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출점 제한 규정을 강화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을 비준안 처리 뒤 곧바로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며, 오는 7월1일 협정 발효 뒤에는 국내 중소상인 보호를 아예 협정문에 담도록 유럽연합 쪽과 추가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더라도 협정 발효에 따른 부작용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중소상인 보호 입법의 무력화를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유럽연합과의 협정은 국내 법률과 같은 효력이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투자자와 기업은 협정에 따른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돼 있다. 협정문에는 유럽연합의 경우 도심 내 영세상인 보호법을 예외규정으로 뒀지만 한국 쪽에는 인정하지 않고 소매업을 전면 개방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이는 국회가 지난해 11월 진통 끝에 마련한 두 법률(유통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또 우리나라가 1980년에 가입한 ‘조약법에 관한 빈협약’에 따르면, 조약과 충돌하는 특정 국가의 법률 조항은 상대국 국민에게 적용할 수 없다. 즉 중소상인 보호법은 아무리 강화해봤자 국내용으로만 유효한 셈이다.
민주당은 비준동의안 표결에 참가하기 전에 야당과의 연대도 고려해야 한다. 4·27 재보선 직전에 야4당끼리 맺은 정책연합 합의문에는 ‘협정문을 국회에서 전면 재검증을 해 독소조항을 고칠 때까지 비준을 공동 저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교역과 투자만 아니라 환경, 보건, 교육 등 국민 일상생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국회는 이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지금은 협정문에 어떤 독소조항이 들어 있는지 재검증하고 완벽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비준안 동의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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