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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허울뿐인 축산업 선진화 방안 |
정부가 어제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를 위한 세부방안을 내놨다. 전대미문의 구제역 재앙과 이에 따른 국내 축산농가의 엄청난 피해를 겪은 뒤 재발 방지 차원에서 마련한 대책이다. 대책의 뼈대는 축산업 허가제를 도입해 축산물의 총생산량을 적절하게 관리하면서 가축질병 방역에 대한 축산농가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미 고사 직전인 축산농가에 더 많은 짐을 떠넘기는 ‘축산업 규제방안’이다.
방역체계 개선안부터 지나치게 미봉적이다. 구제역 재앙은 동물을 학대하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공장식 축산이 빚은 참사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죽하면 전세계 축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조차 농장동물 복지에 관한 지침을 마련해 지속가능한 친환경 축산을 장려하겠는가. 축사에서 나오는 오·폐수 등 환경오염, 축산 종사자들의 각종 직업병 노출, 구제역 같은 재앙 발생의 위험 등 부정적 외부효과까지 고려하면 공장식 축산은 경제성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번 대책에는 국내 축산업의 근본적인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도, 실천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 대책이 국내 축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선진화에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구제역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방안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7월1일부터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고,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까지 비준되면 국내 축산업은 그야말로 궤멸 위기에 놓일 것으로 우려된다.
축산을 비롯한 농어업은 단지 시장경제 원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루과이라운드(UR) 체제에서도 세계 각국은 식량자원 수출입을 수시로 제한하고 있으며, 동식물에 대한 위생검역에는 통상의 논리가 아니라 엄격한 사전예방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식량안보 차원의 고려와 함께 국민 건강과 환경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시장논리에 따른 무분별한 개방으로 식량자원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식량안보지수도 2006년 이후 가파르게 떨어져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대책만 나열해오던 정부가 이제는 아예 ‘소는 키우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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