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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이 민간 사이버안전까지 관여하겠다니 |
국가정보원이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부문 전산체계 보안까지 관여할 뜻을 비쳤다. 농협 해킹 사태를 계기로 엊그제 열린 국정원 주재 국가사이버안전 전략회의에서 이런 뜻이 거론됐다고 한다.
관심사의 핵심은 정보통신기반보호법 개정 문제다. 현행법상으로는 국정원이 금융, 정보통신기반시설 등 개인정보가 저장된 정보통신기반시설에 대해 기술적 지원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런 제한규정을 없애자는 것이다. 최근의 사이버 공격이 민관 구분 없이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국정원의 활동 제약을 풀어줘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국정원은 은행과 통신회사, 포털사이트 등에 저장된 모든 개인정보에 무제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금융거래와 전화통화, 전자우편 통신 내역 등이 샅샅이 노출되는 셈이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특정 사건 수사와 연관될 경우 영장을 발부받아 제한적으로 민간 통신정보 등을 열람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압수수색 대상자를 제멋대로 끼워넣는 편법이 난무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제한장치마저 없애겠다고 한다. 끔찍한 사생활 침해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국정원이 정보를 악용할 가능성도 크다. 국정원은 얼마 전 산업정보를 수집한다는 구실로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침입하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여당 소속인 정태근 의원 등이 국정원에 의한 사찰 피해를 주장하기도 했다. 사이버 보안태세를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선의를 인정해주기 어려운 이유는 너무 많다. 국정원의 이런 행태들을 보면 지금은 직무범위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국정원의 일탈행동에 대한 국회와 시민사회 차원의 감시를 강화할 때다.
사이버 안보를 위한 민관 공동의 치밀한 대응체계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정보수사기관인 국정원이 주도할 일은 아니다. 국가 정보통신망 관리를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안업체 등 관련 민간기업과 컴퓨터 및 인터넷 이용자들과의 긴밀한 협업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다. 인터넷 선진국 가운데 정보수사기관이 민간의 사이버 공간까지 감시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는 없다. 위험천만한 발상을 당장 거둬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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