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5.17 20:04 수정 : 2011.05.17 20:04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광주항쟁이지만 그것은 이웃의 고통에 내민 작은 손길에서 시작됐다. 쫓기는 이웃에 대한 안타까움, 뒤쫓는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분노, 피 흘리는 이웃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현대사의 물길을 바꾼 광주항쟁의 모태였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온몸을 던져 맞서게 한 것도 그 작은 공감과 연대였다.

광주항쟁 31돌, 세대가 바뀌는 길목에서 기념위원회가 올해의 주제를 이웃에 대한 관심과 나눔으로 정한 것이 마음에 다가오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주먹밥 한 덩이, 물 한 그릇, 피 한 방울의 나눔의 연대가 없었다면 그날 광주는 없었다. 어제 열린 민관 공동 헌혈 행사나 국제인권도시네트워크 발족 및 광주인권도시선언 등은 이런 고통의 공감과 희망의 나눔을 기억하고 확산하려는 노력일 터이다.

4·19 혁명이 그러했듯이, 광주항쟁 역시 계속된 비장한 구호와 무거운 주제 속에서 젊음의 역동성과 진취성을 살리기 힘들었다. 국가 관리 아래서 망월동 국립묘지는 더욱 중후장대해졌지만, 5월 광주의 찬란한 젊음은 박제화되고 상투화되는 듯한 인상을 피할 수 없다. 희생자의 몸이야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정신마저 풍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5월 신록처럼 눈부시고 찬란했던 그들의 젊음은, 바로 그 헌신과 희생을 통해 영원한 삶을 얻은 터였다. 그것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그들의 헌신 위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죄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도 군림하고 있는 가해자와 그 수혜자들은 항쟁을 지역화하고, 거기에 이념의 굴레를 씌우기 위해 안달이다. 이 정부 관변단체들은 항쟁이 북의 사주에 의해 일어났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버젓이 내놓을 정도다. 이런 자들의 시비와 방해 속에서 정신의 계승 발전은커녕 그 역사적 의미나마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5월 광주를 있게 했던 젊음의 그 뜨거운 열정과 헌신을 뒷전에 붙잡아둘 순 없다. 오히려 그것을 전면에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자본과 권력의 억압과 폭력에 순응하는 등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무너져가는 인간성과 공동체를 바로 세우고 항쟁의 정신을 올곧게 잇는 길이다. 공감과 연대의 정신으로 그날의 젊음이 다시 박동하게 하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