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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바마 새 중동구상, 새 지역질서의 바탕 돼야 |
미국이 중동지역 정세 재편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발표한 새 중동정책은 중동지역 정세의 근본 골격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는 제안들을 담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튀니지와 이집트를 거쳐 지금도 확산중인 ‘중동 민주화’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추동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67년 전쟁 이전의 경계선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으라는 요구다. 미국이 이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1967년 전쟁 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도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나중에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었지만 나머지 점령지역들은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정착촌을 건설하는 등 사실상의 영토확장을 꾀해왔다. 악화일로를 걸어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반목은 상당부분 거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만일 점령지 철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이-팔 관계는 공존을 향한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의 구상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기회요 출발일 뿐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위험도 있다. 당장 이스라엘 쪽에서 반발하고 있고 미국 공화당과 친이스라엘 세력이 거기에 가세하고 있다.
이번 구상은 오바마 대통령의 말대로 “지난 반년간 중동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오바마 요구의 배경에는 지금 이대로는 미국조차도 그 변화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존재한다. 그 변화의 동인은 중동 민주화다. 친미적 권위주의 독재자 등과의 제휴를 통해 유지해온 미국의 중동정책은 아랍 민중의 거센 민주화 요구 시위로 더는 지탱되기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스라엘의 존립조차 위태로워질지도 모를 상황이 됐다. 무바라크 체제 이후의 이집트에서 유화적인 대이스라엘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지난 15일의 대규모 ‘나크바’ 시위에서처럼 기존 체제를 거부하는 민중의 몸부림이 거세지고 있다.
오바마의 새 구상은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오히려 선도함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고육책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나 미국내 친이스라엘 세력의 반발에도 한계가 있다. 이번 구상에 과거와는 다른 기대가 쏠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새 구상이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고 결국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기득권을 재확립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돼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도 기득권에 집착해온 기존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공존과 더 큰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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