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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가 주목한 ‘무산일기’와 근로빈곤층 감독 |
새터민을 다룬 저예산 장편영화 <무산일기>가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굵직한 국제영화제에서 벌써 상을 9개나 받았다. 하지만 그 영화를 만든 박정범 감독은 옥탑방을 벗어나지 못한 근로빈곤층 신세다. 공사판 노동자 등 안 해본 일이 없고, <무산일기> 제작에도 수천만원의 빚을 졌다.
박 감독의 현실은 지난 2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와 지병으로 숨진 뒤 사회적 화두가 됐던 영화계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영화계에 여전히 수많은 ‘최고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잘 아는 스태프는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의 임금이 밀려 있고, 예산이 줄어들면 스태프 인건비부터 줄이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화산업협력위원회의 2009년 말 자료를 보면, 스태프의 연평균 소득은 623만원에 불과했다. 그해 노동자 법정 최저임금인 1003만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루 평균 촬영시간은 13.5시간으로, 대부분 과도한 연장근로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초과근무수당을 받은 스태프는 1.6%에 그쳤다. 그나마 1년에 5.27개월(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조사)만 일할 뿐이었다. 영화라는 화려함에 가려진 채 벼랑 끝에 몰린 영화계 노동자들의 현주소다.
이런 노동조건의 개선 없이 영화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혹시 한두 작품이라면 모를까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품들을 안정적으로 생산해내기는 어렵다. <무산일기>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한편으로 “힘들어도 하면 된다”는 잘못된 논리의 지탱에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마저 드는 이유다.
영화인들이 원하는 근로자 지위 인정과 표준근로계약서 제도의 시행, 실업부조금 제도 도입 등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정치권은 2009년 국회에 제출된 여러 ‘예술인 복지법안’의 처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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