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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군기지 오염, 소파 틀 넘어선 대응이 필요하다 |
고엽제 매몰 고발 이후, 퇴역 주한미군 장병의 관련 증언이 쏟아진다. 부천의 캠프 머서에선 상상 가능한 모든 화학물질이 버려졌고, 1978년 미2사단에선 부대 안 고엽제를 없애라는 사령부 지시가 떨어졌으며, 1968년엔 일부 캠프에서 고엽제를 막사 주변에까지 광범위하게 뿌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금까지 미군기지의 기름 방류나 중금속 오염은 여러 차례 적발됐지만, 치명적 독극물까지 멋대로 투기됐다는 증언이, 다름 아닌 미군 병사들 입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증언자는 자신이 ‘실험실 동물 같았다’고 토로했지만, 우리 국민이야말로 그런 심정이다.
그로 말미암은 국민적 불안과 상처 난 자존심이 어떻게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미 양국 정부는 오로지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격언을 명심하고 따라야 할 상황이다. 증언의 임의성과 구체성만 보아도, 당장 주한미군의 부도덕성을 규탄하고 책임 문제를 따지기에 충분하다. 은폐의 유혹이야 있겠지만 꿈도 꿔선 안 된다. 오히려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의 틀을 넘어서 진상규명 대상과 절차, 방법을 결정하도록 노력하는 게 현명하다. 그런 비상한 조처만이 신뢰의 위기와 국민적 저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진상규명 주체도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되어야 하며, 시민사회가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행위자인 주한미군이 주체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특히 조사 대상은 거명된 기지 외에 앞으로 반환될 기지 33곳도 포함해야 한다. 이미 반환된 기지 47곳은 대부분 심각한 중금속·유류 오염으로 정부가 정화비용만 3000억여원을 투입해야 할 지경이다. 국민으로선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내년에 반환될 캠프 마켓의 경우 인근 거주지역의 중금속 및 석유계 총탄화수소 오염치가 기준치의 12배, 35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라고 다를까. 주한미군도 양해각서를 핑계로 반대하지는 않으리라 기대한다.
우리 정부의 문제점도 심각하다. 고엽제에 관한 한 정부는 시종 축소·은폐하려 했다. 1968~69년 사이 비무장지대에 민간인까지 동원해 고엽제를 살포했다는 의혹이나, 당시 살포한 고엽제의 양과 남은 고엽제의 처리 등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한다. 정부나 주한미군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독히도 하찮게 여겼다는 분노를 피하는 길은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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