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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북관계 파탄 드러낸 ‘정상회담 비밀접촉’ |
북한이 어제 남쪽 정부 핵심인사들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는 베이징 비밀접촉 전말을 공개하고 나섰다. 남쪽 당국자들이 돈봉투까지 내놓으면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정치적 절충 등을 꾀하기에 거절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사실과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가 사실상 파탄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런 일이다.
정부가 북쪽과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한 것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정상회담은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유력한 방법이다. 당국 간 사전 정지작업도 당연히 필요하다. 오히려 북쪽이 접촉 전말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게 문제다. 북쪽의 태도는 대화 기반을 유지하려는 성의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그러나 접촉의 구체적인 내용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남쪽 당국자들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북쪽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쪽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자고 했다고 한다. 남쪽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북쪽의 책임을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북쪽은 무관함을 주장해왔다. 이 문제가 정상회담 추진의 걸림돌임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남쪽 제안은 양쪽 당국이 처음부터 짜고 치는 눈속임을 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북쪽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사과하지 않는 한 남북정상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거듭 공언해왔다. 그런 터에 이런 제안을 했으니 누가 봐도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남쪽 당국자들이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하면서 돈봉투를 내밀었다는 대목도 문제다. 정부는 그동안 북쪽에 끌려다니는 남북대화는 하지 않겠다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까지 꽁꽁 틀어막았다. 정권의 기반인 한나라당은 전임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을 돈 주고 산 회담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현 정부 당국자들이 돈봉투로 유혹하려다 망신당했다는 소리를 북쪽한테 듣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한심하고 민망한 행태다.
정부는 그동안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기왕의 남북 교류협력을 끊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에는 대북 압박을 한층 강화했다. 그러다 임기 말이 가까워 오자 남북관계 성과를 챙겨보자는 초조감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가 단단히 망신을 당한 꼴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대북정책을 먼저 변화시키는 게 옳다. 이를 통해 대화 여건을 조성해 나가다가 정책 변화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회로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게 순리다. 이런 깜짝쇼 방식으로는 진정한 남북관계 발전을 결코 이룰 수 없다. 이쯤 되면 당분간 남북 양쪽 정부에 뭘 더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이럴 바에는 남북관계를 더 망치지 말고 현상유지나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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