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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여입학제, 반값등록금 해법 아니다 |
대학 등록금을 낮추기 위한 방안이 백가쟁명식으로 거론되면서 교육의 본질과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조처들까지 무분별하게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일부 사립대와 정부·정치권에서 나오는 기여입학제 도입이 전형적인 사례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그제 국회 답변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기부금이 가난하고 능력있는 학생들을 위해 100% 쓰인다면 (기여입학제를)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비록 ‘개인 의견’이라지만, 그의 발언은 은근슬쩍 기여입학제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이나 다름없다.
기여입학제는 대입정책에서 ‘3불(不)’로 불리는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중에서도 반대 여론이 가장 많은 제도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대학 자율성 제고나 열악한 재정 확충을 이유로 끈질기게 도입 주장이 나오곤 했다. 지난해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에 취임한 뒤 “100억원 정도 기부해 건물을 지어주는 분이 있으면, 그들의 2세나 3세에 대해 정원외 입학을 허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큰 반발을 산 바 있다. 그랬던 기여입학제가 이번엔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명분 아래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는 결코 반값 등록금의 해법이 아니다. 기여입학은 무엇보다 사회의 근본 구성원리인 기회균등 원칙을 훼손한다. 부모의 재력이 사교육 등 여러 방식으로 자녀의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기부금이 대학에 들어가는 직접 통로가 되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공동체의 존립 기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 유력 사립대에만 기부금이 쏠려 대학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빚고 서열을 더욱 고착시킬 게 뻔하다. 기여입학제 옹호론자들은 흔히 미국을 예로 들지만, 이런 부작용 때문에 미국 외에 기여입학을 허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등록금 부담 완화에 보탬이 되도록 기부가 활성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를 위해 기부를 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기금을 조성해 많은 대학에 혜택이 가도록 하는 등의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반값 등록금 논의는 정부의 재정 투입 확대와 사립대 개혁을 큰 축으로 진행하는 것이 올바르다. 기여입학제는 반값 등록금 해법을 찾는 데 혼선과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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