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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재인의 <운명>이 폭로한 ‘정치검찰’의 맨얼굴 |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쓴 책 <운명>의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2년 전 검찰 수사를 비판한 데 대해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 전 실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조사 과정에서 보니 박연차씨의 진술 말고는 통화기록 등 “아무 증거가 없었다”며, 기소해도 공소유지가 쉽지 않으니 처리도 못하고 시간을 끌며 언론을 통한 모욕주기를 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그제 언론 인터뷰에서 “무수한 증거가 수사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며 이를 반박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가 박연차씨의 돈을 받았다는 것을 노 전 대통령이 사전에 몰랐다는 당시 정황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이 전 중수부장이 사석에서 해온 주장을 종합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의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선 박씨의 일방적인 주장 이외에 별도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뭔가 있는 듯이 변죽을 울리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추가자료가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공개하든지, 아니면 수사 책임자로서 조용히 자성하는 게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측근들에게 수사의 칼날이 와도 원칙과 소신대로 수사하도록 모두 허용”했다는 노 전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았던 ‘정치검찰’은 지금 살아있는 권력 앞에선 충성스런 순한 양이 됐다. 권력 실세가 관련됐다 싶은 사건은 하나같이 핵심을 비켜가고 꼬리 자르기가 횡행한다.
이 전 중수부장은 옷을 벗었지만 당시 수사를 맡은 중수부 1과장은 좌천은커녕 요직인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발탁됐다. 또다른 정치사건인 비비케이 사건을 무난하게 처리한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는 대검 중수부장으로 영전했다. 그 알량한 인사권에 휘둘리는 비굴한 몰골이 우리 검찰의 적나라한 맨얼굴이다.
노 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검찰이 정치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이라고 봤다”고 문 전 실장은 책에서 밝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정치검찰 논란은 더 확산되고 검찰개혁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양식 있는 검사가 있다면 그 책을 읽어보고 참회록이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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