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민주당, 줏대도 전략도 없이 끌려다닐 텐가 |
한국방송(KBS) 수신료 인상안을 놓고 민주당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가 뜬금없이 한나라당과 수신료 인상안 표결처리에 합의했다가 이튿날 최고위원회가 뒤집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민주당의 오락가락 행보는 일차적으로는 당 대표와 상의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김 원내대표의 책임이 크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이 처한 정체성의 혼란, 안이한 현실인식, 원내 전략의 부재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안 문제는 이미 지난 4월13일 발표된 야4당 정책연합 합의문에도 ‘인상 저지’로 못박은 사안이다. 여야의 주고받기식 흥정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에 속한다. 어제 야4당 원내대표들이 다시금 천명한 대로 한국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프로그램 편성의 자율성, 예산의 투명성뿐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이 전제되지 않고는 논의될 수 없는 사안인 것이다.
<한국방송>은 당장 내일모레부터 6·25 특집으로 백선엽 장군을 집중조명하는 데 이어 광복절 무렵에는 5부작으로 이승만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예정이다. 독재자와 친일파를 미화할 우려가 크다는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을 국회에 출석시켜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방안 등을 들어본 뒤 수신료 인상안을 논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야4당의 정책연합 합의문 7항에는 ‘KBS 수신료 인상 저지’는 물론 ‘종합편성 채널의 특혜를 바로잡는 방송법 개정’ ‘조·중·동 종편방송 취소방안 공동 마련’ 등의 내용도 들어 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이 하는 모습을 보면 종편 특혜 시정은 고사하고 오히려 특혜를 덤으로 안길 태세다. 종편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한나라당의 지연전략에 밀려 미디어렙 법안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종편의 독자적 광고영업으로 종편 광고시장이 무법천지가 될 형편인데도 민주당은 속수무책이다.
민주당은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안 처리 시행착오를 계기로 당의 정체성과 이념적 지표는 물론 원내 전략 전반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뚜렷한 줏대도 없이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따위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계속하다가는 기존의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하게 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