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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 손질 급하다 |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복수노조 시대가 7월1일 열린다. 수십년 동안 하나의 사업체에서 하나의 노조만 가능했던 체제가 ‘1사 다수 노조’ 형태로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지각변동이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노동계도 경영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복수노조 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노동계와 정치권에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복수노조 규정을 손질하라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은 민주노총·한국노총과 합의를 거쳐 야당 의원 81명의 이름으로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노동계와 야당이 손질을 요구한 복수노조 규정의 핵심은 ‘교섭창구 단일화’(제29조의 2)다. 노조법은 하나의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있더라도 교섭은 노조들이 합의로 정한 노조나 과반수노조 등의 방식으로 창구를 단일화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다수 조합원을 거느린 노조와 의견을 달리하는 소수노조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상실하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이는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이 하위법인 노조법에 의해 박탈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한국노총은 어제 창구단일화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노조법은 이와 함께 산별노조의 각 사업장 지부도 해당 사업장의 다른 노조들과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라고 규정하고 있어, 산별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크다.
정부와 경영계는 모든 노조가 교섭권을 가지면 교섭비용이 증가하고 노사갈등도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해관계가 달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노조들을 억지로 묶을 경우 되레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설령 교섭비용 등이 증가하더라도 그것을 헌법상의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보다 우선시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창구단일화를 유지한 채 노조법이 시행되면 노동현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게 뻔하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어제 노조법 개정안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상정을 끝내 거부했다. 국회의 입법권을 스스로 부정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밀어붙이려고 청와대가 압력을 넣은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한나라당은 노조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에 상정해 복수노조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 헌재도 사안의 급박성 등을 고려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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