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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계부채 종합대책 |
이명박 정부의 첫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어제 나왔다. 우리 경제의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를 더는 방치할 수 없어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석달여 고심 끝에 마련했다고 한다.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둔화시키고, 기존 대출금의 상환기간이 좀더 길어지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대책의 뼈대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예고한 “강력하고 획기적인 대책”은 없었다. 주로 시장에 간접적으로, 천천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들이다. 정부의 상황 인식과 해결 능력에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까닭이다.
가계부채 문제의 악화는 시장의 실패와 잘못된 정책의 결과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부채와 자산거품의 부작용을 조정하는 국면에 들어간 반면 우리나라만 역주행을 해왔다. 전체 가계의 평균 금융부채가 연간 가처분소득의 1.5배 안팎으로, 2002년 ‘카드사태’ 때보다 더 높다. 거품 붕괴 이전의 미국이나 일본에 견줘서도 더 나쁜 수준이다. 한편으로는 수출대기업 위주의 고용 없는 성장으로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더욱이 금리 정상화 국면과 맞물려 자칫 가계파산→금융권 부실 증가→채무상환 압박→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이런 위급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사태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규 대출을 억제하는 방안은 있지만 이미 발생한 부실을 어떻게 처리할지,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건전성 지표 악화를 어떻게 개선할지 등에 대한 해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변동금리형 만기 일시상환 대출상품을 고정금리의 장기 분할상환형 상품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안도 당장에는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하려면 먼저 은행의 자금조달 구조가 장기화해야 하는데, 현재 은행의 단기자금 조달금리는 연리 3%대인 반면 커버드본드 등 장기자금은 5%대다.
가계부채 문제는 단지 금융권의 대출 관행을 바꾸는 정도로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의 뿌리는 깊고 넓게 퍼져 있다. 근본적으로는 가계의 소득기반이 강화되어야 한다. 집값과 물가는 빚이 아닌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안정돼야 한다. 요컨대 거시경제 차원의 체질 개선 없이는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앞으로 정부가 내놓을 후속 조처와 추가 대책에 이런 점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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