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09 13:35
수정 : 2011.07.09 13:38
사 설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이 어제 한국방송(KBS) 보도국 소속 민주당 출입기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장아무개 기자가 지난달 23일 비공개로 열린 민주당의 한국방송 수신료 대책회의 내용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취득한 혐의를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현직 기자의 집까지 압수수색하고 나섬으로써 ‘한국방송 도청 연루설’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한국방송은 “경찰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특정 정치집단과 일부 언론이 제기한 의혹제기에 근거해 압수수색을 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국방송의 이런 항의는 왠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경찰이 기자의 집까지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철저한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경위를 소상히 밝혔어야 옳다. 그런데도 이런 노력은 없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은 없었다”는 따위의 발표로 의구심만 더욱 증폭시켜 놓았다. 압수수색에 대한 한국방송의 유감표명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방송은 도청 의혹 사건이 경찰 수사에서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영구미제’로 끝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당 회의 녹취록을 공개한 당사자인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함구하고, 한국방송이 “증거를 대보라”고 계속 우기면 그냥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눈치다. 하지만 한국방송은 이런 기대가 착각임을 알았으면 한다. 이런 사안을 어물쩍 넘길 만큼 우리 사회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찰도 현직 언론인 집까지 압수수색한 만큼 조직의 명예를 걸고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방송사와 한나라당 눈치 보기로 수사를 흐지부지 끝내서는 안 된다.
때마침 세계적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의 한 신문이 실종소녀 가족 휴대전화 해킹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결국 폐간 조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폐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유명 연예인들의 사생활 등을 주로 다루는 전형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방송은 국민의 시청료까지 받고 있는 공영방송이다. 도청 의혹과 한나라당과의 부적절한 거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책임은 김인규 사장 사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뒷감당을 어떻게 할 요량으로 한국방송 경영진이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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