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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KBS 기자들, 증거인멸까지 할 셈인가 |
스마트폰을 이용해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를 도청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방송 장아무개 기자가 도청 의혹 사건이 표면화된 뒤 휴대전화와 노트북컴퓨터를 교체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찰이 최근 장 기자 집에서 압수한 휴대전화 등은 사건 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한국방송 쪽이 도청 기록을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 쪽은 “국회팀 기자들이 6월 말이나 7월 초에 회식을 했는데 그때 분실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도청 의혹을 제기한 게 6월24일이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게다가 휴대전화뿐 아니라 녹취 내용을 풀어 저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트북까지 몽땅 잃어버렸다니 할 말을 잃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믿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은 한국방송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국민이 보기에 ‘휴대전화 분실’ 주장은 오히려 ‘범행 자백’으로 비치는데도 한국방송은 “증거가 있으면 내놓으라”며 ‘우기기 작전’에 들어갔다. 한국방송의 태도는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증거만 없으면 얼마든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는 뻔뻔스러움 그 자체다.
한국방송 정치부 기자들이 엊그제 발표한 성명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도청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제3자의 도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제3자 도움설 자체도 미심쩍지만 더욱 주목되는 것은 ‘한나라당과의 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한국방송이 부적절하게 취득한 민주당 회의 내용을 한나라당에 넘겨주었느냐는 것인데 그 대목은 쏙 빼먹은 것이다. 거기까지 거짓말을 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던 탓일까.
한국방송 정치부 기자들은 대부분 젊은 기자들이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열정이 한창 불타올라야 마땅한 시기다. 그런데도 당당히 진실을 털어놓는 용기를 보이기는커녕 궁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구차한 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안타깝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으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언론사에 몸담은 사람들이니 누구보다 잘 알 터이다. 설사 거짓말로 눈앞의 위기를 모면한다고 치자. 그러고도 사회의 목탁을 자처하고 정의와 양심을 설파하며 살아갈 것인가. 한국방송 기자들의 깊은 성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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