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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삼성의 상식적인 노사문화를 기대한다 |
삼성그룹에서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할 가능성이 큰 노동조합이 등장했다. 삼성에버랜드 조합원이 주축인 ‘삼성노동조합’은 엊그제 민주노총에서 출범식을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7월1일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 삼성그룹에서 첫번째로 설립된 진보를 표방한 노조다. 이로써 삼성이 고수해온 ‘무노조 경영’의 아성이 형식적으로는 허물어지는 양상이다. 삼성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거리다.
삼성노조는 전체 계열사와 협력업체까지 포괄하는 초기업단위 노조로 나가겠다고 한다. 당장에는 삼성에버랜드를 주력 사업장으로 해 점차 외연을 넓혀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삼성노조는 첫발만 내디뎠을 뿐 더 나아가기 힘든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다.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교섭창구가 막혀 있는 탓이다. 이미 삼성에버랜드를 비롯한 일부 계열사에선 회사 쪽에 우호적인 ‘어용노조’들이 속속 등장해 교섭권을 독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 개정안의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을 악용하는 행위다. 또 복수노조의 의미를 무너뜨린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회사로부터 독점적 교섭권을 인정받으면 2년 동안에는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져도 단체교섭은 물론 파업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일단 삼성은 노조 설립은 막지 않는 대신에 고분고분한 노조한테만 교섭권을 주고 껄끄러운 상대는 처음부터 배제하는 전략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의 사령탑 구실을 하고 있는 미래전략실은 올해 초부터 노사문제를 전담하는 ‘신문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각 계열사에서 노조가 설립되더라도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다양한 대응전략을 짜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삼성은 온갖 물리적 강제력까지 동원하며 노조 설립을 봉쇄했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전근대적인 원칙을 내세워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무시해온 것이다. 이런 관행은 국내에선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기업을 평가할 때 제품이나 기술의 경쟁력뿐 아니라 환경과 노동 같은 사회적 규범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다. 반노동적 관행은 기업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게 경영학계의 상식이다. 노조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 상생의 노사문화가 삼성 안에서도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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