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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장 맹신, 인간 상품화 재촉하는 교과서 지침 |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제시한 ‘2011 사회 교육과정 개정시안’을 놓고 교사 사회의 걱정이 태산 같다. 2013년 발행되는 중·고교 사회·경제 교과서 집필 지침(안)인 이 시안이 시장을 맹신하고 노동은 일개 상품으로 간주하도록 기술할 것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 중3 사회와 고교 경제 교과서에서 노동과 관련한 단원을 없애고, 고교 경제 교과서에선 시장의 한계와 관련한 단원을 없애도록 했다. 아무리 친기업·친자본 정권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인간’을 자본에 예속시킬 줄이야.
노동은 인간의 물리적 생존을 유지하는 수단이기에 앞서 그 꿈과 가치를 실현하는 본원적 요소다. 전체주의 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최고 규범에 노동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하고 쟁의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나아가 선진 각국은 노동 교육을 초·중등 과정 필수 항목으로 지정한다. 일본의 경우 시장근본주의 세례 이후 급증하는 실업자와 심화되는 양극화 속에서, 교과서에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술을 강화하도록 했다. 만약 노동을 수요·공급 원리에 따르는 한낱 상품으로 간주한다면, 이런 규정과 지침은 근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등 약자에 대한 보호장치도 있을 수 없다.
시장의 효율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시장의 실패와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거듭된 시장 실패의 한 사례일 뿐이다. 방임된 시장은 독과점, 불평등, 불공정을 심화시킨다. 공동체를 투쟁의 정글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가계부채와 신용불량 등으로 고통을 겪는 것은 재테크를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시장 기능을 보정하는 정부의 역할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의 한계를 배제하고 그 순기능만 가르치라는 것은 학생들을 시장과 자본의 종으로 길들이자는 것과 다름없다.
시안 개발자는 전경련의 중학교 경제 인정교과서 집필자다. 정부가 대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하청업자로 전락한 셈이다.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와 소비자의 이해를 반영하지는 못하더라도 자본과 노동, 사용자와 피고용자의 이해와 관점을 조정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정부다. 극소수 강자에게 힘을 더 실어주는 정부라면 누가 그런 정부를 믿고 따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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