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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환율-저금리 기조 바꿔야 물가 잡힌다 |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엊그제 청와대 안에 물가대책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하더니 어제는 물가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다음주까지 부처별로 물가대책을 마련하도록 주문했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전을 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가당국을 대통령이 총지휘하는 것에 대해 시장에선 벌써 의구심이 일고 있다. 실패의 경험이 많은 탓이다. 자칫 정부의 물가관리 능력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관계장관 회의에서 물가안정이 최우선 정책과제임을 강조하며 “발상의 전환으로 관습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창의적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우선 행정안전부에 주요 생활물가 10가지 정도를 선정해 시·도별로 비교표를 만들어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지방자치단체들끼리 물가안정을 위해 경쟁을 벌이지 않겠느냐는 발상에서 나온 지시로 보인다.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 정부가 대응의 고삐를 더욱 옥죄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적절하지도 않고 효과도 의문인 수단까지 동원하는 것은 불신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8년 이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52가지 ‘주요 생활물가지수’(MB물가지수)는 실패작으로 판명이 났다.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억지로 물가를 누르는 방식은 반짝 효과를 거둘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한꺼번에 물가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장 새달부터 줄줄이 오를 예정인 공공서비스요금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물가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정공법으로 대응하지 않고서는 잡기 어렵다. 특히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고환율-저금리 기조를 바꿔야 한다. 수출 둔화와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지는 등 이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으나, 정책의 우선순위를 물가안정에 두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고통이다. 지금의 물가난은 장기간의 저금리에서 비롯된, 가계나 공공부문이 짊어진 과도한 부채의 반격이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통화당국의 신뢰회복이다. 진정으로 물가안정 의지가 있다면, 이와 상충하는 정책 목표를 섣부르게 내놔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 김중수 한은 총재가 하반기 물가상승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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