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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선임계도 안 내고 전화 한 통에 수억원을 받다니 |
수천억원 탈세 혐의 사건 압수수색 과정에서 변호사 3명에게 수억원씩의 수임료가 건네졌다는 메모가 발견됐다. 그런데 정작 해당 변호사들은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이 진행중인 이른바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 사건 수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부 변호사는 수임료 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실제로 수임료가 제공됐는지, 됐다면 정확히 얼마가 건네졌는지, 이들이 어느 정도 변론에 개입했는지 아직은 자세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보도 내용으로만 보면 변호사업계의 오랜 악습인 ‘전화 변론’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선임계를 내지 않은 채 전화로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고 청탁하는 ‘전화 변론’은 검찰에서 특히 많이 이뤄져왔다. 선임계를 내지 않고 공식 변론 대신 뒤에서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는 식이다.
그동안 광범위하게 이뤄져온 이런 악습은 명백히 변호사법 위반이다. 변호사법 29조의2는 내사 사건의 경우에도 반드시 선임계를 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선임계를 내지 않고 받은 보수는 소득신고를 안 하게 돼 탈세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관행은 또 지난 5월 개정된 전관예우 금지 조항을 무력화시킬 위험이 크다. 논란 끝에 시행에 들어간 변호사법 31조는 판검사 등이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할 때까지 근무한 곳에서 처리하는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선임계를 내지 않는 전화 변론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런 조항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전관예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낳는 법조계의 고질적인 악습이다. 여야 이견과 법조계의 반발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전관예우 금지 조항만은 만사 제치고 통과시킨 것도 그만큼 국민의 비판이 컸던 때문이다. 어렵게 만들어놓은 전관예우 금지의 그물망도 쉽게 뚫어버리는 ‘전화 변론’은 퇴행적 악습이므로 반드시 퇴치시켜야 한다.
먼저 이들 검찰 고위직 출신 선배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검찰 간부나 수사검사들이 있다면 침묵을 지키고 있어선 안 된다. 분명한 범법행위에 눈을 감는 것은 검사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검찰의 자체 조사가 필요하다. 변호사회 역시 즉각 사실을 확인해 필요하면 제명까지 해서라도 이런 악습을 근절해야 한다. 그래야 전관예우를 뿌리뽑고 땅에 떨어진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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