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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조사 무용론’ 자초한 정치권 |
저축은행 국회 국정조사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를 보면 이들의 진심이 과연 무엇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저축은행 사태의 배경인 정경유착과 관리감독 부실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열의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얼렁뚱땅 조사하는 시늉이나 내고 끝내자는 데 이심전심 합의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정조사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어제까지 줄다리기를 계속했으나 삼화저축은행 불법 자금을 한나라당에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수 전 한나라당 청년위원장의 증인 채택 문제에 대한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했다. 이로써 국회 국정조사는 청문회도 열지 못한 채 오는 12일 흐지부지 마침표를 찍게 됐다. 기를 쓰고 이씨의 증인 채택에 반대한 한나라당이나, 청문회 무산을 무릅쓰면서까지 고집을 꺾지 않은 민주당 모두 오십보백보다.
하지만 여야가 그동안 타결한 증인 채택 결과를 보면 이런 사생결단의 태도는 오히려 실소를 자아낸다. 사태의 진실을 밝힐 핵심 증인들은 이미 줄줄이 빠져나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감사원장 시절 저축은행 감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황식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도 일찌감치 증인에서 빠졌다. 관심을 모은 박지만씨 부부의 증인 채택 문제도 슬그머니 실종돼 버렸다. 사실 청문회를 열어도 아무런 영양가 없는 청문회가 될 상황이었던 셈이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가 그동안 보인 모습은 실망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지난달 24일 출범한 뒤 여야간 입씨름과 폭로전 등으로 한달 가까이를 허송세월했다. 가까스로 문서검증과 기관보고 활동 등을 시작했으나 새롭게 문제를 파헤치거나 구체적으로 의혹을 입증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몇몇 국정조사 위원들은 아예 조사장에 얼굴도 잘 내비치지 않고 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부실한 검찰 수사에 이어 국회 국정조사도 변죽만 울린 채 막을 내리면서 정치권 한쪽에서는 벌써 특검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진실을 밝히려면 현실적으로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정치권이 특검 운운하는 것은 무능을 자인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국회 스스로 국정조사 무용론을 자초하며 국회의 권능을 깎아내리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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