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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로비 문건, 전경련 회장 대국민 사과 해야 |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재벌 이익에 반하는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만든 ‘대기업 정책 동향 및 대응방안’ 문건은 충격적이다. 내용을 보면 삼성·현대 등 6대 재벌에 여야 중진 의원을 구체적으로 할당해 집중로비를 벌이도록 했다. 또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 증인 채택 요구에 대기업 총수는 원칙적으로 불참하고 대신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를 내보낸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범죄집단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부도덕한 발상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사정당국은 정치권 로비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진상을 밝히기 바란다.
전경련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구체적으로 삼성그룹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을 맡고, 현대차그룹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을 맡아 반 대기업 입법 저지 활동을 강화할 것을 회원사에 요구했다. 전경련은 나머지 의원들과 청와대 백용호 정책실장, 김대기 경제수석을 맡겠다고 자처했다. 그러면서 개별 접촉과 함께 후원금, 출판기념회, 지역구 사업 및 행사 후원, 민원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라고 했다니 돈으로 법을 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경련은 로비가 아이디어 차원일 뿐 실행되지 않았다고 발뺌하고, 해당 기업들도 그런 내용을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주요 그룹에 할당된 의원들이 해당 기업과의 연고나 친소관계 등이 고려된 점으로 미루어 로비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민주노동당에 1만원의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법인 단체들을 수사한 전례에 비춰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전경련이 국회에서 재벌 총수들을 부르면 출석하지 않고 대신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를 내보내자고 한 것은 기본적인 양식을 저버린 것이다. 총수가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게 재벌 문제의 핵심으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인데, 잘못된 관행을 감싸고 부추기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반 대기업 총수 정서에 편승해 기업인을 국회에 증인으로 채택하는 움직임이 늘어났다는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재벌이 친기업 정책으로 큰 혜택을 입고도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의 부적절한 행태를 보였기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정치권은 로비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법을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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