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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부 충격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한국 금융시장 |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여파가 국내 증시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어제 국내 증시는 그야말로 공포 분위기였다. 지수가 폭락하며 올해 들어 처음으로 유가증권시장 선물거래에 대한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주문 일시 효력정지)와 함께, 코스닥시장에선 ‘서킷브레이커’(거래 일시중단)가 발동됐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닷새째 이어지며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격도 폭락했다. 미국에서 빚어진 경제위기로 국내 금융시장이 미국보다 더 심한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외부 충격에 따른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는 더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전세계 금융시장에 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금융시장은 동조화 수준을 넘어 충격의 가속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미국의 부채협상 타결 뒤 닷새 동안 무려 13.9%나 떨어져 아시아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 기간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맞먹는 170조원이 증발했다.
여기에다 국제 금융시장에선 한국물 국공채의 신용위험지수가 급등했다. 우리나라 국채의 신용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어제 123bp(1bp=0.01%)까지 치솟아 14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요국 국채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심지어 신용등급이 강등된 미국 국채보다 위험지수가 더 빨리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주식과 채권 가격의 하락은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이다.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 소비와 기업활동까지 위축돼 실물경제도 타격을 받게 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불안심리 확산을 신속하게 막아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뾰족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를 너무 많이 풀어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탓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국내 실물경제와는 분리된 가운데 세계 금융자본의 자체 논리에 휘둘리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정부가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 과도한 자본 유출입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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