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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건전재정 위한다며 복지 희생해선 안 돼 |
미국발 경제위기를 기화로 한나라당 일각에서 복지 포퓰리즘·복지 망국론을 들고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엊그제 “재정건전성 악화는 복지 포퓰리즘 탓”이라며 복지 지출 축소 가능성을 내비쳤다. 경제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어이없는 견강부회다.
이 대통령이 복지 포퓰리즘을 탓하면서 굳이 그리스를 예로 든 것은 복지는 비효율이고 낭비라는 인식 때문인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재정은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산업 기반이 거의 없는 그리스는 우리나라와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게 적절치 않다. 재정위기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곳은 유럽 국가 가운데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 선진국들은 경제위기 때 오히려 적극적인 복지지출로 경제안정을 도모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실현했다.
미국의 재정위기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 상황이 악화한 것은 정치권이 부채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1년 1조달러에 불과하던 연방부채는 현재 국내총생산 수준인 14조달러를 넘어섰다. 부채가 이렇게 급증한 주원인은 전임 부시 정부 8년 동안의 무분별한 감세와 국방비 증가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감세를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재정건전성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비 지출 비율은 9%로, 평균 23%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견주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복지를 희생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현 정부 들어 재정건전성이 악화한 것은 부자 감세로 세입이 줄고 4대강 사업 등 토목사업 지출이 늘어난 탓이 크다. 부자 감세 철회 등을 통해 세입을 늘리고, 불요불급한 토목사업을 줄이면 재정건전성과 복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촉발된 증시 폭락 사태는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세계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펀더멘털은 튼튼한 편이지만 금리·환율 운용이 어려워져 차분하고 선제적인 위기관리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복지나 공공사업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양극화 해소에 나서야 한다. 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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