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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직 대통령들, 역사 앞에 무릎 꿇고 진실 밝혀야 |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공개한 대선자금을 놓고 김영삼 전 대통령 쪽과 진실 공방이 한창이다. 2000억원은 금진호씨 등을 통해, 나머지 1000억원은 직접 김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하자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녹음까지 돼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양쪽 얘기를 종합해 보면, 김 전 대통령 쪽은 3000억원 수수 여부보다 “직접 받지는 않았다”는 데 무게를 싣고 있고, 노 전 대통령 쪽은 최소한 1000억원은 직접 건넸다는 주장을 펴는 형국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3000억원이 전달됐을 개연성은 커 보이나 정확한 내용은 당사자들의 추가 해명 없이는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퇴임 직전 청와대 금고에 100억원 이상을 넣어두고 나왔다는 주장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3000억원이 전달됐더라도 정치자금법상 시효가 지나, 이제 와서 법적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자신의 석방을 위한 뒷거래용으로 감추고 있다 10여년이 지나서야 그런 주장을 펴는 노 전 대통령의 태도도 떳떳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회고록 내용을 과거사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시엔 불법이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런 거액을 어떻게 조성했고 대통령 선거 때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당시 아무것도 모른 채 투표에 나섰던 국민들로서는 이제라도 진상을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의 공정성이 유린당했다면 대충 넘어갈 일은 분명 아니다.
이런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차남이나 비서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할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당시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이나 국민에 대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다.
노 전 대통령 쪽도 박 전 장관 등 주변 인물들이 화풀이하듯 비난만 퍼부을 게 아니라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힌다는 자세로 녹음테이프나 녹취록 등 갖고 있는 자료가 있다면 모두 공개하기 바란다. 이 마당에 다시 자료가 있네 없네 공방을 벌인다면 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짓이다. 양쪽 모두 역사 앞에 무릎 꿇는 겸허한 태도로 진실을 남김없이 털어놓겠다는 자세를 보일 때 국민들도 과거의 허물을 용서해줄 마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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