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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엉터리 문안 놓고 투표해도 괜찮다는 억지가 어딨나 |
법원이 어제 야당과 시민단체가 낸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판결문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재판의 주요쟁점은 투표용지 문안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점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서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안’과 ‘소득 구분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2011) 중학교(2012)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안’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런데 둘째 안은 정체불명의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2년 중1, 2013년 중2, 2014년 중3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번 투표의 본질은 ‘선별급식’과 ‘전체급식’ 중의 택일임에도 그런 표현 대신 ‘단계적’과 ‘전면적’이란 표현을 사용했고, 그것도 첫째 안에만 ‘단계적’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투표자를 착각에 빠뜨릴 위험성이 크다. 둘째 안은 마치 내년부터 중학교까지 전면급식을 하는 것처럼 돼 있다. 그런데도 법원이 “2개의 안 중 어느 것도 지지하지 않는 경우… 투표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억지 논리에 가깝다.
서울시가 처음 공고할 때는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였으나 서명부에는 두 방안 중 선택하게 돼 있고, 다시 투표용지엔 ‘무상급식 지원 범위에 관하여’라는 문구가 추가되는 등 청구 취지가 계속 바뀌었다.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동일성이 유지된다”며 서울시 편을 들었다.
짧은 기간에 14만여건의 이의신청이 접수될 정도로 불법 서명이 많았는데도 재검증 과정에서 샘플조사만 진행한 것도 괜찮다고 하는 등 법원은 원고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자투성이의 투표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결정은 법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조례에 대해 대법원에 제소해놓고도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주민투표를 사실상 사주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급식비 695억원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182억원을 들여 ‘정치놀음’을 하고 있는 것을 합리화시켜준 꼴이 됐다. 투표 자체를 무효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투표용지 문안이 바로잡힐 때까지라도 투표를 보류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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