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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반도 주변 정세 변화 알리는 김 위원장 방러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다.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대통령이 2002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이래 9년 만에 북-러 정상외교가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더욱 복잡해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의 방러는 일차적으로 경제협력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년새 세차례 중국 방문을 통해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중 경제협력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의존도가 심해지자 러시아로 협력관계 다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구체적으로 나선경제특구에 대한 투자 유치와 식량 지원, 러시아·남북한 가스관, 철도 연결 사업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발표한 김 위원장의 수행원 명단을 보면 강석주 내각부총리,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이 포함됐다. 이것은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6자회담과 관련해서도 긴밀한 논의가 이뤄질 것임을 예고한다. 6자회담을 빨리 재개해야 한다는 원칙론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이달 초 북한에 5만t의 밀가루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동안 6자회담 등의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발언권이 약했던 러시아가 이런 행보를 통해 존재감을 되찾게 될 것임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이런 정세 변화를 보면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출범 이래 이른바 전략적 인내가 북한을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길임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대북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축소했고 특히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래 압박 정책 강도를 훨씬 높였다. 그러나 북한은 무릎을 꿇기는커녕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나름대로 찾아나서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방러를 계기로 정부의 정책 기조를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은 최근 미국과 직접 대화를 한 데 이어 러시아와 소원했던 관계를 복원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논의 구조를 마련해가는 과정에서 북한이 공간을 넓혀가는 반면에 남쪽은 흐름에서 뒤처지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 외교가 빠르게 바뀌는 주변 정세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게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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