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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 불법 논란 해소 때까지 ‘패킷 감청’ 중단해야 |
국가정보원이 ‘패킷 감청’ 방식을 이용해 구글의 ‘지메일’ 내용까지 들여다보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패킷 감청 대상자였던 김아무개 전 교사가 지난 3월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국정원이 “사이버 망명 대처를 위해서도 패킷 감청은 불가피하다”며 사실상 지메일 감청을 시인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네르바 사건 등을 거치며 이른바 ‘사이버 망명’ 바람이 불어 국외에 서버를 둔 구글의 지메일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국내 수사권이 미치지 못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지메일 감청은 이런 누리꾼들의 뒤통수를 친 꼴이어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을 비롯한 당국 차원에서 지메일 감청 가능성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당당하지 못한 태도일 뿐 아니라 사실상 선량한 누리꾼들을 속인 셈이 됐다.
패킷 감청이란 통신선을 통해 패킷 단위로 잘게 쪼개져 전달되는 데이터를 중간에 가로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패킷 감청을 하게 되면 감청 대상자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뿐 아니라 메신저 대화 내용, 웹서핑을 하면서 들른 사이트와 내려받은 자료들, 인터넷뱅킹 거래명세와 비밀번호 등 회선을 통해 오가는 모든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또 같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가족은 물론 같은 회선을 사용하는 다른 컴퓨터까지 모조리 감청당할 수 있다. 공유기를 통해 한 회선을 공동 이용하는 사무실의 경우 감청 대상자의 컴퓨터만을 걸러내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패킷 감청은 통신의 비밀을 제한하더라도 그 대상은 엄격하게 정해야 한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에도 어긋나고, 나아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도록 한 헌법 18조에도 위반될 소지가 크다. 과거 패킷 감청에 대한 불법 논란이 있어오던 차에 지메일 감청 가능성까지 제기됐으니 이제는 위헌 여부 등 시비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31대의 패킷 감청 장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지금도 패킷 감청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은 법적 논란이 정리될 때까지라도 패킷 감청을 중단하는 게 맞다.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소원 심리를 서둘러 불법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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