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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대사 왜곡 서슴지 않는 장병 정신교육 |
국방부가 장병들을 상대로 ‘종북세력 실체 인식 특별교육’을 벌이고 있다. 최근 발생한 왕재산 사건을 계기로 특별 시사교육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나, 교육 내용과 취지 모두가 의문스럽기 짝이 없다.
국방부 정신전력과는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내부의 적-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라는 제목 아래 파워포인트 영상 자료를 만들어 각 군에 보냈다. 이 자료는 ‘시대에 따라 얼굴을 바꿔온 종북세력’의 활동 사례로 제주4·3 사건과 인민혁명당 사건을 꼽았다. 하지만 4·3 사건은 국회가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2003년 정부가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 사과한 사건이다. 인민혁명당 사건과 관련해선 2007년 1월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가 재심을 벌여 애초 사형이 집행됐던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부와 법원이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았는데도 군당국이 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성격을 둔갑시킨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현대사 왜곡으로 저의가 뭔가라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이 자료는 “시대착오적인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파괴를 기도하는 종북세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배경화면으로 2008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장면을 넣었다. 먹거리 안전을 위해 정부에 항의했던 시민들이 ‘암적인 존재’나 ‘척결 대상’인 것처럼 이미지 조작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근거 없는 일부 극우 논객들의 정치선전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자료 집필자의 인식 잘못을 넘어 군의 정치 중립 의무에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행위다.
말썽이 일자 국방부는 4·3 항쟁과 인혁당 사건 부분을 교재에서 빼기로 했다고 한다. 일부 수정이 아니라 자료 모두를 회수해 폐기해야 마땅하다. 문제의 자료가 극단적인 정치선전 대본에 가깝기 때문이다. 군의 본분을 의심하게 만든 집필자와 배포 책임자들도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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