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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찰청장의 부적절한 ‘정치성’ 발언, 저의가 뭔가 |
조현오 경찰청장이 엊그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전반적으로 부적절하고 동기가 의심스러운 발언이 적지 않다.
그는 1980년대 말 민주화 투쟁기에 활동한 진보세력이 직업운동가로 노동계에 침투해 정치를 이념화하고 있다는 등 진보인사들을 겨냥한 비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한때 13만명까지 올라간 반정부 반사회 성향에 동조하는 세력이 2008년 촛불시위에는 8만명까지 줄었다”며 “이런 세력을 점차 줄여가야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최근의 사회갈등은 양극화 심화에도 친기업 반노동 정책을 고집해온 현 정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조 청장의 발언은 이를 도외시한 채 본말을 뒤바꿔 엉뚱한 데 책임을 돌리는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반정부 반사회 성향 세력이란 표현도 그렇거니와 무슨 기준으로 13만명, 8만명 운운하는지도 알 수 없다. 정부의 쇠고기 수입 협상 실패 책임을 묻는 촛불시위에 나선 것이 왜 반사회 세력인지도 그렇고, 이들을 줄여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진단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사회갈등의 책임을 ‘직업적 혁명가’ ‘직업운동가’에게 돌리면서 굳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까지 거명해 비판한 대목에 이르면 “정치판에 기웃댄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을 떠올리게 된다. 법원의 불구속 결정에 대해 “제대로 판결해야 한다”며 판사들을 꾸짖은 것은 형사소송법의 ‘불구속 원칙’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면 오만의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인, 언론인에게까지 “엄격한 법집행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일갈할 정도이니 그 오만의 끝은 어디인가.
서울 양천경찰서 가혹행위 논란이 최근 재발하고, 어용화하다시피 한 현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올해 들어서만 71건의 인권침해 시정 권고 결정을 내릴 만큼 경찰의 인권의식은 후진적이다. 함바 비리 사건으로 직전 경찰청장이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도덕 수준도 낮다. 조 청장 역시 경찰청 경비국장 시절 억대의 조의금을 받아 물의를 빚었다.
경찰청장으로서 그런 지적을 하려면 민중의 지팡이로서 제 할 일을 하고 조직을 제대로 추스르는 일부터 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경찰에 수사개시권이 주어졌는데도 한국방송 도청의혹 사건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이런 것부터 제대로 처리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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