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리얼 시네마 ‘85호 크레인’과 부산영화제의 희망 |
부산은 해운대 바다의 부서지는 햇살처럼 찬란한 젊음과 환호로 물결친다. 그 진앙엔 지난 6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있다. 아시아 첫 영화제 전용 상영관도 마련하고,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작들도 선보이니, 기대와 발길이 쏟아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영화제는 그동안 특별한 주제를 내걸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주최 쪽 의도와 무관하게 영화인들과 애호가들 가슴엔 이미 비슷한 물음이 새겨져 있다. ‘영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영화 <도가니>의 충격 탓도 있겠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재진행형의 ‘85호 크레인 농성’으로 말미암은 바 크다.
‘도가니’가 잔혹 영화보다 더 잔혹하고 야만적인 현실을 드러냈다면, 85호 크레인은 탐욕스런 자본에 의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절망을 상징한다. 도가니가 수사기관·법조계·교육계·정치권 등 위선자들에 맞서는 공분을 불러일으켰다면, 85호 크레인은 자본과 정치권력의 폭력에 맞서는 이들의 희망을 일궈내는 연대를 불러왔다. 도가니의 현실은 영화를 통해 전형성을 획득하고, 영화의 전형성은 그런 현실의 폭력과 질곡을 극복하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85호 크레인도 이런 과정을 밟아간다. 이것이야말로 부산영화제가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영화의 미래를 여는 열쇠일 것이다.
영화제가 지구촌의 혁명과 분쟁, 난민과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영화를 많이 소개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영화인 1543명도 최근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오늘 희망버스로 영화제를 찾겠다고 밝혔다. 현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기반을 둘 때 영화적 허구는 현실을 넘어서는 전형성을 획득한다는 이치에서 볼 때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자본과 결탁한 정치권력은 세계인의 시선이 영화제를 넘어 85호 크레인으로 쏠리는 것을 차단하려 기를 쓴다. 희망버스에 대한 원천봉쇄와 의법조처 등 협박을 늘어놓고, 돈 냄새 풀풀 나는 용역 폭력의 동원도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탐욕스런 자본의 노동자 생존권 박탈에서 비롯됐다. 피해자를 옥죌 게 아니라 가해자를 벌해야 한다. 희망의 행진을 막을 게 아니라, 영화로 제작해 더 많은 이들이 희망을 나누도록 지원하길 바란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