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미 국방부 방문, 주권국가 대통령이 할 일인가 |
미국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잇달아 부적절한 행보를 하고 있다. 특히 그제(현지시각) 미 국방부를 방문해 미군 지휘부로부터 한반도 안보상황을 브리핑받은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청와대는 미국한테 대단한 대접을 받은 듯이 설명하지만 주권국가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또 가장 잘 알아야 하는 나라는 우리다. 미국도 우리보다 잘 알기 어렵다. 대통령이 우리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한테서 받는 브리핑에 최고의 정보가 집중돼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주한미군사령관인 한미연합사령관한테서 보충할 수도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안보정세를 브리핑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거꾸로 우리 대통령이, 그것도 미국 백악관도 아닌 국방부를 찾아가 안보정세를 브리핑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우리 대통령이 현 체제에서 한반도 안보상황을 파악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이 대통령 쪽에선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한다는 이미지 효과를 고려한 듯하다. 짧은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 힘으로 안보를 책임지기 어려우니 미국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우려가 더 높다. 미국을 방문하는 동맹국 정상들 가운데 누구도 미 국방부에서 자국 안보상황을 브리핑받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일은 주권국가 대통령이 생각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이다. 미국에 대한 의존심리가 워낙 깊어서 상식적인 판단 기준마저 흔들리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이 대통령이 엊그제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미국의 역할 확대와 중국 견제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문제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터에 노골적으로 미국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우리 국익을 해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미국에 가면 한-미 동맹을 다지고 중국에 가면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한-미 동맹을 튼튼하게 유지하되 주변 여러 나라와도 두루 협력하는 게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이 대통령처럼 말하고 다닌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심지어 미국 지도자들도 중국 견제에 한국이 참여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의 신중한 발언, 신중한 행보가 요구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