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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나라당마저 반대한 검찰의 ‘FTA 괴담’ 수사 |
민심이 이명박 정권에서 떠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는 법의 힘을 빌려 여론을 억누르고 반대자를 옭아매는 공권력의 남용도 한몫했다. 걸핏하면 친북이니 반미니 하는 낡은 색깔론을 들이미는 것도 젊은층 사이에서는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 정권은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오히려 민심에서 더 멀어질 궁리만 하는 것 같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엊그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인 문제제기마저 모두 반미·친북으로 몰아붙였다. 에프티에이에 뜬금없이 ‘김일성과 박정희’까지 등장시키며 황당한 논리를 전개했다. 국민을 설득하려는 성실한 노력 대신 반대자들에 대한 색칠하기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려는 얄팍한 수법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에프티에이에 찬성하는 김 수석 같은 사람은 ‘미국의 앞잡이’라고 매도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내용도 어처구니없지만 국회와 청와대의 충실한 가교 노릇을 해야 할 정무수석이 한나라당 의원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훈계를 늘어놓고 돌격명령을 내린 것도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다.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시위자와 유언비어 유포자를 모두 구속수사하겠다는 검찰의 방침은 더욱 기가 막힌다. 검찰이 ‘괴담 문건’으로 예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독소조항 12 완벽정리’ 문건은 협정의 문제점을 쉬운 비유(예를 들어 역진 방지 조항에 대해 ‘한국팀은 전진만 할 수 있고 수비를 위한 후퇴는 못한다’ 등)로 설명한 문건이다. 이런 문건을 배포만 해도 처벌하겠다는 검찰이 과연 제정신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이미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했다가 무죄판결로 톡톡히 창피를 당한 바 있다. 검찰이 당시 형사처벌의 근거로 내세운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까지 받았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이 원내대책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검찰 방침을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규정하고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겠는가.
김효재 수석이나 검찰의 행동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따른 결과임이 분명하다. 요즘 한나라당 한쪽에서 터져나오는 쇄신 요구에 이 대통령은 오히려 정반대의 행보로 답변을 대신한 셈이다. 소통과 쇄신, 국정기조 전환 등의 호소는 역시 이 대통령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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