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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합 지원금으로 선거운동’ 의심받는 농협 회장 |
오는 18일 치러지는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8조원에 이르는 조합 지원금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집행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났다. 지원금이 일반조합보다 회장 선거에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조합에 훨씬 많이 배정됐다는 것이다. 중앙회장이 조합 지원금을 이용해 사실상 선거운동을 벌인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조합 지원금은 무이자 자금이므로 많이 받을수록 득이다.
지난해 선거권이 있는 대의원조합 217곳의 평균 지원금은 56억4900만원이었던 반면, 일반조합 759곳은 35억8200만원으로 58%나 차이가 났다. 대의원조합 가운데 조합장이 중앙회나 22개 자회사 임원 등의 보직을 맡은 곳은 지원금이 65억9600만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농협 쪽은 대의원조합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지원금 배정에 차이가 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반조합과 대의원조합의 지원금 격차는 회장 선거가 전체 조합장 직선제에서 대의원조합장들의 간선제로 바뀐 2009년 이후 부쩍 커졌다.
농협 지원금은 오랜 세월 농협의 사업이익을 쌓고 조합원들의 출자로 불려놓은 농민들의 소중한 자산이다. 지원금은 조합의 균형발전과 사업 활성화 등을 위해 집행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회장의 통치자금처럼 쓰이다 보니 취지가 퇴색하고 도덕적 해이로 조합원 해외여행이나 상품권 구입 같은 데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합 지원금 절반만 경제사업에 투입해도 국내 농산물시장을 농협에서 장악해 농산물값 안정과 농가소득 향상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된 데는 최원병 현 회장의 책임이 크다. 최 회장은 2007년 취임하면서 지원금을 투명하게 운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운영 실태를 공개하지 않고 지원금 심의위원회 활동 내용조차 비밀에 부치고 있다. 혁신은 뒷전이고 재선에 골몰한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그러다 보니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후보 자격 시비와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일어 벌써 재선거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가뜩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암운이 드리워져 있는 마당에 농민들의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농협중앙회는 조합 지원금이 정치적 목적으로 쓰이지 않도록 사용 내역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최 회장은 그가 한 단임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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