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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금융소비자 보호할 의지가 있기는 한가 |
금융위기 뒤 세계 각국은 금융소비자 보호제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금융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감독원의 소비자 보호 기능을 따로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이라는 조직을 새로 만들고, 불공정하거나 약탈적인 영업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한 듯하다. 무늬만 갖춘 소비자 보호 대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어제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보면, 무엇보다 금소원의 독립성에 의구심이 든다. 금융위는 금소원을 ‘준독립기구’라고 하지만 인사와 예산은 물론이고 업무에서도 금융위와 금감원의 입김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게다가 금감원과 마찬가지로 운영예산의 대부분을 금융회사한테서 받는 분담금과 수수료 수입에 의존해 업계로부터의 독립성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금소원에는 금융회사를 압박할 수 있는 검사권이나 제재권도 없다. 문제가 생기면 금융회사에 ‘사실 확인’ 차원의 조사를 하고 금융위나 금감원에 조처를 건의할 수 있는 권한밖에 없다. 금소원 임직원의 재량으로 적극적인 소비자 보호에 나서기도 어렵다. 업계에선 벌써 금감원과 금소원의 중복 규제에 따른 시장 혼란을 우려한다.
금융시장은 늘 공급자와 수요자 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정보력에서 우위에 있는 공급자는 시장에서 늘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교섭력을 따로 갖추지 못한 수많은 금융소비자들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금융시장에선 소비자 보호를 위한 공적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금융당국은 금융산업 육성에 우선순위를 둔 나머지 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미뤄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는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감독기구의 주요 보직에 대거 포진해 권력의 눈치만 보고, 감독당국과 금융업계의 유착은 더 심해졌다.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 있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 심심하면 터지는 은행과 보험사 등의 불완전 판매 피해는 금융감독의 총체적 부실이 빚은 결과다. 금융당국이 진정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의지가 있다면 감독 체계와 규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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