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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랍의 봄’, 80년 ‘서울의 봄’ 재판 안 되길 |
무바라크의 30년 독재체제를 몰아낸 이집트 2월 민중봉기의 거점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서 1주일 전부터 다시 시작된 대규모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시위의 중심 구호는 ‘군부통치 종식’이다. “무바라크 축출은 연습게임이었고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1979년 10·26 이후 서울의 봄이 민주주의를 꽃피우지 못하고 다시 전두환 군사독재를 불러온 30여년 전 이 땅의 역사가 중동에서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무바라크 이후 첫 선거인 28일의 하원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이번 시위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아랍의 봄’과 중동평화의 장래까지 좌우할 또 한번의 중대 고비다. 준내전상태의 시리아와 권력이양에 착수한 예멘의 장래도 거기에 달렸다. 이집트 시위의 직접적 계기는 이달 초 과도정권인 최고군사위원회가 발표한 ‘신헌법 기본원칙’이었다. 군사위는 거기서 민정이양을 2013년 또는 그 이후가 될 헌법제정과 대통령선거 뒤로 미루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게다가 헌법 초안위원회 100인 중 80명을 자신들이 지명하고 민정이양 뒤에도 의회의 예산심사를 받지 않는 특권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새 총리 자리에 무바라크 정권 때 총리를 지낸 사람을 앉힌 것도 반발만 키웠다.
무바라크의 푸들이라던 무함마드 탄타위가 의장인 군사위는 진작부터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의 급진적 이슬람화를 막는 비상관리기구로 여겨져 왔다. 그 뒤에는 이집트 국방비의 3분의 2에 상당하는 20억달러를 매년 원조하는 미국이 있다. 군사위는 저항이 거세자 기본원칙은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한발 물러섰으나, 문제는 그대로다.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에도 반정부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해 3500여명이 희생당한 시리아에서는 정부군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내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조만간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예멘에선 살레 대통령이 퇴진 의사를 밝혔으나 측근을 권좌에 앉히고 군부의 추종세력도 온존시킨 채 시위를 유혈진압함으로써 권력이양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처럼 기득계층의 권력 집착은 집요하기만 하다. 그 바람에 ‘아랍의 봄’은 아직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채 자칫 다시 겨울을 맞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 있다. 아랍 시민들이 이 난관을 돌파하기를 바라면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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