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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위법적인데다 합리성도 결여된 조광래 감독 경질 |
조광래 월드컵축구대표팀 감독 경질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배경을 둘러싸고 의혹이 꼬리를 무는데다, 고질적인 한국 축구계의 파벌싸움이 재연되고, 팬들의 원성이 봇물을 이룬다. 이런 이전투구 속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를 확정짓는 내년 2월 월드컵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인 쿠웨이트전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런 평지풍파의 책임은 전적으로 대한축구협회 회장단에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절차도 지키지 않았고, 제시한 경질 이유도 합리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회장단에는 감독 임면권이 없다. 감독 임면은 오로지 독립 기구인 기술위원회가 결론을 내리고, 이사회의 추인으로 확정된다. 대표팀 구성과 운영에 축구 외적 요소, 즉 정치적 행정적 압력이 개입하는 것을 막고자 마련한 장치다. 축구인들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제도를 보호해야 할 회장단이 앞장서 파괴했다. 회장단은 기술위원장 대행이 참석한 비공식 모임에서 경질을 결정하고 통보했다. 기술위원회가 공석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그건 회장단의 잘못일 뿐이다. 파벌적 고려에 따라 그런 짓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양식 있는 축구인들과 팬들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
회장단은 지난 8월 한·일전과 11월 바레인전에서 부진했으며, 이대로는 본선 진출이 어렵다는 것을 경질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반대의 시각과 평가도 많다. 조 감독이 추구해온 빠른 패스를 통한 공격적인 축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리더였던 박지성·이영표의 은퇴에 해외파 부진 따위의 악재가 겹쳐 부진했을 뿐 본선 진출은 무난하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기술위원회를 속히 재구성해 축구계의 의견과 평가를 폭넓게 수렴해야 했다. 게다가 스폰서 방송사의 압력을 거듭 받았다고 기술위원장이 실토했으니, 회장단의 주장은 어떤 합리성도 가질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경질 뒤다. 지금 상태로는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오히려 더 작아졌다. 불과 2개월 만에 이런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비전에 따라 팀을 정비해 쿠웨이트전을 승리로 이끌 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 회장단은 독단적 결정을 거둬들여야 한다. 기술위원회를 속히 가동시켜 합리적 결론을 내도록 해야 한다. 축구까지 국민을 힘들게 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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