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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나치게 미흡한 대북한 조의 표명 |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조문단은 보내지 않되 북한 주민을 위로하는 형식의 간접적인 조의를 표하고 민간 조문단의 방북을 허용하는 쪽으로 일단 정리했다. 결정을 계속 미루거나 조의 표시나 민간 조문조차 거부할 경우 예상되는 이른바 남남갈등 심화와 남북관계 악화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가려고 고심한 듯하다. 이제까지의 정부 자세에 비춰 볼 때, 그나마 무난한 처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담화문 형식의 정부 발표는 몹시 어정쩡하고 소극적이다. 나라 안팎의 보수적인 여론을 과도하게 의식한 결과인 듯하다. 이번 기회를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조문외교의 장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로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북과 협상중이던 미국이 김일성 주석 사망 때 구사했던 방식을 원용한 듯한 이번 조처는, 그러나 그때의 미국에 비해서도 소극적이다. 당시 미국은 비슷한 조의 표명과 함께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를 스위스의 북쪽 공관에 설치된 빈소로 보내 조문하게 했다. 북은 그것을 평가했고 그 뒤 북-미 핵협상이 재개돼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뤄냈다. 우리 정부는 갈루치 대표 수준의 조문도 불허했고 민간 조문도 북이 특사 조문단을 보내온 몇몇 경우에 한정한 답례 차원으로 제한했다.
1994년 조문논란 때 김 주석을 “전범”이니 “반국가단체 수괴”로 몬 집권당과 보수언론의 조문반대 캠페인이 벌어지자 김영삼 정부는 남북관계의 장래보다는 당장 표를 얻을 수 있는 국내 정치 우선의 조문 반대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국내 여론은 분열될 대로 분열됐고 남북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다.
정부는 그때와 같은 상황은 피해가고 싶었겠지만, 적극적인 대안 제시보다는 어정쩡한 짜맞추기로 얼버무린 감이 있다. 지금과 같은 경색 국면에선 그마저도 평가받을 만하지만 미흡하다. 무엇보다 조문 문제를 북쪽 지도자들의 품성과 자질을 문제 삼는 도덕논쟁으로 끌고 가는 소극적·방어적 자세보다는, 조문을 남북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비전을 바탕에 깐 외교의 장으로 만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싶다. 조문은 동족으로서, 대화 상대로서, 또한 불가분의 이웃으로서 최소한의 예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통일문제, 핵문제, 경협문제 등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논의를 한 차원 더 높이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은 북이 좀더 개방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로 바뀌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통제불능의 불안상태로 전락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회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전기가 될 수도 있고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남북 당사자들의 의지와 능력에 달렸다.
북이 우리가 바라는 쪽으로 좀더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끌어가면서 분단문제를 해소하고 통일을 앞당기고 싶다면, 조문단 파견까지 포함한 적극적인 조문외교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 북에 새 지도부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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