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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의 대북 인식 수정 뜻, 구체화 기대한다 |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대북정책 기조를 바꿀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그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우리가 취한 조치들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북한에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김 위원장한테 최종 책임이 있다”며 김정은 부위원장 후계체제와 관계 개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런 움직임은 남북관계를 둘러싼 나라 안팎의 현실을 나름대로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은 북한의 새 지도부와 빠른 속도로 관계를 맺거나 심화시켜 나갈 듯한 태세다. 남쪽만 북과 관계를 끊고 고집을 부리다가는 외톨이가 되기 꼭 알맞은 상황이다. 가령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관련한 5·24 대북 제재 조처는 북한에 대한 제재의 실효성은 떨어지고 남쪽 정부와 기업의 운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 지 오래다. 국내 정치 차원에서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쪽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계산이 엿보인다.
아무튼 대통령과 청와대가 남북관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때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남북관계 현안들을 찬찬히 풀어가는 게 옳다. 5·24 조처 해제, 금강산 관광과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개성공단 확대 운영 등은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남북 경협을 확대하는 것은 중국이 북쪽 경제를 완전히 석권하기 이전에 균형을 유지해준다는 점에서도 시급하다. 6·15, 10·4 남북 정상선언의 이행 문제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잘 정리해서 담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성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궁극적인 통일을 염두에 두면서 남북이 기존의 적대정책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벌써부터 수구세력 일각에선 그제 대통령 발언을 놓고 천안함·연평도 사건 면죄부를 내주려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족의 장래에 대한 성찰과 한반도 주변상황 변화에 대한 인식을 결여한, 극단적 이념만 앞세우는 이런 주장에 휘둘려선 안 된다. 모처럼의 정책 기조 수정을 정부 안팎에서 논란이나 벌이다 유야무야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 표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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