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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정은 시대, 남북 주도 새 관계 계기 돼야 |
어제 영결식까지 무사히 치름으로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 발표가 몰고온 북의 위기상황과 그로 인한 한반도 긴장사태도 고비를 넘겼다. 다행스런 일이다. 판문점 등 접경지역들에선 지난 열흘간 충돌은커녕 경색국면치곤 의외다 싶을 만큼 평온했다. 남북 모두 큰 분란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대처했다. 이는 17년 전의 험악했던 ‘조문 파동’ 때에 비하면 한층 성숙한 모습이다.
그때의 교훈을 살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해간 정부 조처는 평가할 만하다. 시민단체들도 ‘조문 정국’을 대북정책 및 남북관계를 바꾸는 재료로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정부의 한계를 비판했지만 대결은 자제했다. 북 역시 남쪽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긴 했으나 그 이상의 대결은 피했다. 방북 조문단도 남쪽 사람들로서는 북쪽의 새 후계자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이번 조문 정국이 향후 남북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줬다는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남북간 불신의 벽이 이번 일로 쉽게 허물어질 리도 없거니와, 주변국들을 경유하지 않고는 제대로 만날 수조차 없는 단절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장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며 남쪽 정치상황도 유동적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민족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절박한 사태가 발생해도 남쪽이 손쓸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상대적 평온과 안정도 한반도 급변사태를 바라지 않는 주변 강대국들의 명시적·묵시적 합의 덕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북 체제 붕괴와 흡수통일에 대한 기대도 헛된 꿈이다. 남북이 힘을 합쳐 주도적으로 이 현상을 바꿔가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분단과 대결의 소모적 민족 공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존 동맹 의존 일변도는 진영대결 구도만 굳혀 우리 입지를 더욱 좁힐 것이다.
이런 한계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남북이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한다. 이번 조문 정국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선 남북이 만나야 한다. 경협도 관광도 핵문제도 그래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6자회담도 남북이 먼저 뚫어야 한다. 주변국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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