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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99%’의 참여로 평화·연대의 새시대를 열자 |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2012년 새해를 맞았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엄혹하고 불확실하나 그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우리의 열망 또한 그에 못지않게 간절하다.
‘리먼 쇼크’에서 촉발돼 유로권까지 휩쓴 경제위기로 자본주의 체제는 최대 위기에 처했고, 그 체제의 정점에서 세계를 이끌어온 미국의 지배력도 약화되고 있다. 중심질서가 흔들리는 와중에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강국들은 물론 남과 북도 권력교체기에 들어섰다. 북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29살의 청년 김정은을 앞세운 새 체제가 출범했고, 우리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세계 전체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가운데 한반도는 더욱 불안정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낡은 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나라 안팎에서 이미 시작됐다. 밖에서는 재스민혁명으로 불붙은 중동의 민주화 흐름이 어렵사리 이어지고, 자본의 탐욕과 무분별한 시장만능주의가 낳은 1 대 99 사회를 거부하는 99%의 분노의 함성이 전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다. 안에서도 2008년 촛불시위에서부터 시민후보를 서울시장에 당선시키는 위력을 보인 안철수 현상에 이르기까지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민중의 움직임이 분출했다. 절대다수 민중의 삶에 눈감고 그들의 소망에 귀 막은 기성 권력에 맞서 민중 스스로 역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온 것이다.
99%로 상징되는 다수 민중의 요구는 자명하다. 가진 1%만이 아니라 못 가진 99%도 주인으로 대접받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다. 죽자고 일해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세상, 인간성을 말살하는 극단적 경쟁에 내몰리는 고단한 세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녕이 보장되고 이웃과 서로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미완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가까워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퇴행해온 정치적 민주주의를 원상복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실현할 때 비로소 민주화는 완성된다. 우리 헌법도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면서도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요건은 공정한 경쟁과 패자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튼튼한 사회안전망, 그리고 노동권의 인정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각종 특혜와 불공정을 용인해 경제의 재벌 집중과 부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켰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 공정한 분배 및 복지 확충 요구는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였다.
경제민주화 등 우리 사회의 전반적 민주화를 가로막는 구실로 활용돼온 게 분단현실이다. 남쪽 기득계층은 정당한 헌법적 권리의 주장조차 그릇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억압해왔다. 북이 극단적 억압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역시 분단에 기댄 바 크다. 바로 여기에 남과 북 민중의 희생을 대가로 온존해온 분단체제를 혁파하고 한반도 평화를 주창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김정은 체제의 등장은 분단에 기댄 왜곡된 체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북한이 지난 세밑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성급하게 포기할 일은 아니다. 북의 태도는 대북 화해정책을 폐기한 채 북의 자멸만 기다려온 남쪽 정권의 탓이 크지만, 이행중인 북 체제의 허약성 탓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인내를 가지고 북이 호혜적인 민족공영의 길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상황 악화를 막고 대화의 물꼬를 틀 책임은 북보다는 성숙한 남쪽에 있다.
99%가 주인 되는 세상은 그 99%가 주인으로서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열린다. 양대 선거가 있는 올해야말로 새 세상의 밑돌을 놓을 호기다. 따라서 올해 주인 된 자의 관건적 과제는 냉철한 이성으로 새 세상을 담지할 정치세력을 판별해내고 투표를 통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새로이 직접민주주의의 도구로 등장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그 밖의 의사표현 수단을 활용해 우리 사회와 정치를 평화와 연대의 새 시대로 이끄는 일 역시 주인 된 자의 책무다. 99% 민중의 각성과 참여만이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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