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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더기 미디어렙법과 방송사들의 이전투구 |
국회의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법안 논의가 완전히 궤도를 이탈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엊그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누더기에 가까운 미디어렙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나라당은 방송 공공성을 외면한 채 ‘조·중·동’ 종편과 일부 공중파 방송사에 유리한 법안을 밀어붙였고, 민주당은 ‘2011년 연내 처리’에 매달리다 한나라당 주장을 맥없이 수용했다. 미디어렙이 우리 사회에 미칠 심대한 영향을 무시한 무책임한 결정이다.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남겨둔 법안은 ‘방송의 제작·편성과 광고영업의 분리’라는 제도의 근본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종편의 민영 미디어렙 위탁을 승인 시점 기준으로 3년 동안 늦춰 직접영업을 보장했다. 여야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던 2년 유예안보다 후퇴한 방안이다. 민영 미디어렙의 방송사 지분 소유 한도는 40%로 사실상 ‘1사1렙’의 길을 터줬다. 또 방송사와 계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교차판매도 허용했다. 조·중·동 종편 특혜의 완결판이자 에스비에스 특혜 법안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대로라면 방송 광고시장의 교란과 중소 언론의 위기, 여론시장의 보수·친기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혼란이 예견되는데도 여야가 법안에 합의한 것은 당리당략에 매몰된 탓이 크다. 하지만 종편은 물론이고 공중파 방송사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 또한 영향을 미쳤다. 문화방송, 한국방송, 에스비에스의 보도본부장이 지난 27일 함께 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법안 처리와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 등을 요청한 것은 단적인 예다. 공영방송을 자임해온 문화방송은 내심 민영 미디어렙을 기대하며 여야의 상식있는 법안 처리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 특히 한국방송은 미디어렙 법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수신료 1000원 인상안의 처리를 막판에 요구하며 정치권을 혼란에 빠뜨렸다. 방송 공공성에 책임이 큰 지상파 방송사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혼란의 원인은 법안 취지의 실종에 있다. 방송사는 직접 광고영업을 해서는 안 되며, 미디어렙은 특정 방송사의 지배가 불가능하도록 지분이 흩어져야 한다. 이런 원칙에 부합하려면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공영 렙으로 묶이고, 에스비에스와 종편은 최소 숫자의 민영 렙을 만드는 게 답이다. 정치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기준에 합당한 법안의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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