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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희망’을 느낄 수 없는 이 대통령의 신년연설 |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발표한 신년연설은 주로 임기말 국정의 ‘안정적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잇따른 실정으로 힘이 빠진 이 대통령의 처지를 반영한 듯 평소의 엉뚱한 자신감이나 독선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진정성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는 연설이었다. 사과는 두루뭉술했고, 성찰은 미흡했으며, 국정운영의 변화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저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고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자신과 친인척, 측근 비리 문제에 대한 사과의 표시였으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시늉뿐인 사과였다. 용어 선택부터 ‘사과’나 ‘사죄’라는 말 대신 ‘송구’라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했다. 내곡동 사저 문제를 비롯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에 비춰보면 이 정도 표현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이 놀랍다.
사실 이 대통령이 지금 사과해야 할 대상은 측근비리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올해 신년연설에서는 지난 4년간의 실정에 대한 총체적인 사과가 있어야 마땅했다. 민주주의의 후퇴, 인권의 실종, 민생경제의 파탄, 남북관계의 후퇴 등 전방위에 걸친 국정실패를 통렬히 반성하고 지금부터라도 국정운영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각오 표명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헛된 바람일 뿐임을 신년연설은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이 대통령의 신년연설 제목은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과연 국민 중 몇 사람이나 희망을 느꼈을지는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도 일자리, 청년실업 해결 등을 약속했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화려한 말의 성찬에 불과했다. ‘물가 3% 초반 억제’ 약속만 해도 이미 기획재정부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2%로 내놓은 것을 재탕했다. 남북관계에서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을 언급하지 않는 등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하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새롭게 전개되는 한반도 상황에 대응해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적극적인 의지나 전략은 엿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위기’만 있고 ‘희망’은 느껴지지 않는 신년연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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