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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권’, 영면한 김근태의 영원한 희망 |
유신과 5공의 철권 독재도 꺾지 못했던 김근태 민청련 의장이었지만, 고문에 의한 육체적 파괴를 이기지는 못했다. 제적, 강제징집, 수배, 투옥 등 20여년에 걸친 탄압도 평화와 정의를 향한 그의 행진을 막지 못했지만, 고문의 상처는 결국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의 영면으로 말미암은 빈자리가 한없이 크지만, 오히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유지가 눈 속의 댓잎처럼 더욱 시퍼렇게 살아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의 처절한 희생과 헌신은 민주주의 불모지 한국이 인권 모범국 대열에 진입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경제적으론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이지만,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룬 나라로서 그 품격을 국제사회에 자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국격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더는 입에 올릴 수 없이 추락했다. 오죽했으면 아시아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에 한국의 등급을 A에서 B로 조정하도록 요청했을까.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과 국제앰네스티 본부는 해마다 한국 인권상황 후퇴에 대해 강력한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국제기구의 이런 우려가 우리의 추락한 현실을 모두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촛불시위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은 철거민 6명을 불태워 죽인 용산참사로 이어졌고, 지금도 자살이 이어지는 쌍용차 사태에 이르게 했다. 피디수첩, 미네르바, 쥐 그림 기소 등 언론 표현의 자유는 뿌리부터 뽑힐 위기에 처했고, 시국선언 공무원 해고, 진보정당 소액후원 교사 무더기 징계 등 기본권조차 마음대로 유린했다. 기륭전자·동희오토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은 철저히 무시당했고, 동성애자나 이주민 등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조장되기에 이르렀다. 정권의 몸종이 되어버린 이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조차 오죽했으면 표현의 자유, 비정규직 인권, 사회보장제도 등 인권 전반이 후퇴했다고 평가했을까.
김근태는 말했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고. ‘(몸과 정신을) 바싹 말려 바스러트리고 돌돌 말려서 불에 튀기는, 핏줄을 뒤틀고 신경을 마디마디 끊어내는’ 전기고문 속에서도 그가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 곧 민주주의와 인권의 희망이었다. 이제 누구인가. 그가 남긴 그 희망을 품고 전진할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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